[중부시론]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우리 교육이 위기를 맞고 있다. 지금까지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었던 일들이 벌어졌다. 얼마 전에는 악성 민원으로 대전의 한 여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경기도의 한 고교에서는 정년퇴직을 1년 앞둔 체육 교사가 목숨을 버렸다. 서울과 전북의 학교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따른 후 폭풍도 거세다. 가해자로 지목된 해당 학부모가 운영하는 식당은 비난이 잇따르자 문을 닫았다. 인터넷과 SNS를 이용한 신상 털기와 사적 보복도 도를 넘었다.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교사의 사망에 따른 트라우마에 힘들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운동선수들의 학교폭력 논란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배우 김히어라의 '일진' 논란도 이슈로 떠올랐다. 앞서 정치권에선 방송통신위원장과 전 국가수사본부장 후보의 아들 학폭 논란도 있었다. 2천년대 이후 교육 당국이 다양한 대책을 내놨지만 오히려 상황은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 폭력의 양상도 과거 단순 폭력에서 복합적인 폭력으로 진화하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의 학교 모습은 약육강식의 무질서 공간이나 다름없다. 학교를 관통하는 논리는 오직 대학 입시와 '내 자식만이 최고'라는 인식뿐이다. 공동체의 덕목과 가치는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물론 이런 요인만이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필자는 한 부분 사회진화론적 관점에서 본다. 어떤 사회든 어느 정도 먹는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자연스럽게 학습권과 교육권의 충돌, 더 나아가 학생들의 인권이 신장되면서 나타나는 병리적 현상이란 것이다. 예컨대 서구사회에서는 이미 우리보다 앞서 겪었던 잦은 교권 침해, 이런 이유로 교직을 매우 힘들고 험한 직업으로 인식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서구사회의 학교들이 만성적으로 교사 구인난을 겪는 것은 이런 분위기를 잘 반영한 결과다.

이유야 어떻든 교권 침해와 학교폭력은 모두 방임적 권리만을 강조하는 우리 사회의 산물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고도의 압축성장을 거치며 물질적으로는 나아졌지만, 정신적으로는 성숙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란 의미다. 끊이지 않는 사회 지도층의 갑질과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으로 규정하는 '내로남불,' 물질만을 성공의 잣대로 여기는 천박한 배금주의가 학교 현장을 이렇게 만들었다. 이런 모습만 보고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미래는 더욱 암울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이런 학교 모습을 바꾸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상황은 더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학교는 공동체의 미래다. 선진국의 교육철학이 시민적 덕성을 함양하는 데 집중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선진국의 학교 교육은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 관용과 협업의 역량을 기르는 데 힘을 쏟는다. 하버드대학의 덱스터 게이트(Dexter Gate)엔 "교정에선 지혜를 키우고 밖으로 나갈 때는 더 나은 인류·사회를 위해 봉사하라"고 쓰여 있다. 학교에서 배울 것은 지식뿐이 아니며 졸업 후에 할 일 역시 일신의 양명만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교사와 학교,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교사들의 소명 의식도 중요하다. 물론 교사들의 소명 의식이 부족해서 지금의 문제들이 발생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훌륭한 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교대나 사대로 진학한 학생들이 소명 의식 없이 갔겠는가. 지금처럼 어렵고 힘든 상황일수록 더욱 소명 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소명 의식은 천부적 의무감에 가깝다. 우리가 흔히 말하듯, 소명 의식 없이 단순히 직업의식만 있다면 교직을 수행하기가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훌륭한 스승, 훌륭한 사표가 될 수 있겠는가. 오늘도 교육 현장에서 묵묵히 학생들을 가르치며 고군분투하는 많은 선생님들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과 응원을 보낸다. 전국의 모든 선생님, 오늘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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