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2024 갑진년(甲辰年)이 얼마 남지 않았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미래 교육의 키워드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용의 눈으로 다시 생각해본다. 또 학교는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까. 그 변화를 위해 각 구성원들은 어떻게 기능해야 할까. 21세기 교육의 키워드는 누가 뭐래도 '인성'과 '창의성'이다.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동전의 양면처럼 같이 가야 한다. 교육부도 이를 주요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이 두 가지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한 결과일 것이다.

인성교육(Humanistic Education)은 교육을 통해 인간의 선성(善性)을 회복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인간으로서,' '인간인 이상,' '인간을 위한 교육'이 지향점이다. 이런 인식의 바탕 위에서 학교의 교육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인성교육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모든 교육활동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시대정신(Zeitgeist)과도 같이 가야 한다. 시대정신은 그 시대 사람들의 의식과 요구를 반영하는 내면적 정신이다. 예컨대 군사독재 시대에는 민주화가 시대정신이 될 수 있었다. 시민에 의한 혁명이란 그 시대가 요구하는 민주화의 당위성을 그대로 지지해주는 정신으로 기능한 사례다. 시대정신이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과도 상호연관성을 갖는다. 이런 연결성으로 상호 간 영향을 주고받으며 시대정신으로 나타난다. 귀족에서 시민으로, 수직에서 수평으로, 비민주에서 민주로, 집단에서 개인으로, 남성에서 양성으로, 야만에서 인권으로 변화되어왔다. 이러한 변화가 결과적으로 현재의 인문 정신으로 이어진 것이다. 인문은 인간의 정신을 고양시키는 일과 관련이 깊다. 인권, 개성, 다름과 차이 등으로 치환할 수 있다.

20세기까지는 효율성의 시대였다. 이런 패러다임은 전형적으로 산업혁명에서 발아된 것이었고 물질적 삶을 향상시키는데 최종목표가 있었다. 이런 점에서 과거의 시대가 물질의 시대였다면 오늘날 인문의 시대는 정신적, 인간적인 것과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다. 세기가 달라진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의 흐름만을 구분하는 것은 아니다. 패러다임의 변화를 동반하며 그 패러다임의 변화가 인간의 삶을 이끌어가는 방향성으로 이어진다.

교육도 시대적인 상황과 패러다임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현재 이루어지는 교육의 모습과 방법이 과거와 다른 것도 이런 이유다. 교육에서의 패러다임 변화는 단순히 교육내용과 방법, 목표만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가장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 핵심적인 가치는 시대정신과 맞물려 그 바탕 위에서 발전하게 된다. 더 정확히 말하면 교육과 시대정신은 씨줄과 날줄처럼 항상 같이 간다는 의미다.

옷감은 씨줄만으로, 혹은 날줄만으로는 짤 수 없다. 서로 대립되는 것 같은 씨줄과 날줄이 서로 조화롭게 만나 한 폭의 옷감이 만들어진다. 인성교육이 씨줄이라면 도구적, 기술적 교육은 날줄에 해당한다. 인성교육이라는 씨줄만 있다면 학교는 삶에 직접적으로 필요한 기술이나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근대적인 교육 기능을 수행하기 어렵다. 반대로 인성교육을 배제하고 도구적 교육에만 치중한다면 역시 제대로 된 인간을 길러내기 어렵다. 인성교육과 도구적 교육이 적절히 조화를 이룰 때 학교는 제대로 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현재 우리의 상황은 씨줄 하나, 혹은 날줄 하나만으로 천을 짜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씨줄과 날줄이 만나야 천이 만들어진다는 간단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한쪽 실만 잡아당기는 모습이다. 착각이거나 오판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씨줄과 날줄이 동시에 만나야 옷을 만들 수 있는 온전한 천이 만들어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촘촘하게 잘 짤 짜서 좋은 옷을 만들 것이냐, 아니냐는 순전히 우리 자신들의 몫이다. 2024 갑진년은 "약무교육 시무국가(若無敎育 是無未來)," 즉 '교육이 없다면 미래도 없다'는 생각으로 좀 더 촘촘한 교육을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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