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선 / 교육평론가, 문학박사

교육활동은 학교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되어야 할까. 항상 품고 있는 질문이다. 해답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 by case)다.

우리 교육은 다른 교육선진국들과 달리 집단주의적 특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모두가 같은 잣대와 집단주의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된다.

개인은 집단을 위해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개인에 비해 집단의 덩치가 지나치게 크다. 개인은 왜소한데 비해 집단은 거구(巨軀)다. 우리 교육의 커다란 문제점이다.

단언컨대, 개인이 존중되지 못하는 교육은 좋은 교육이 아니다. 개인차 교육, 눈높이 교육, 수준별 교육, 면대면(面對面) 교육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한 개인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여기에는 개인이 지니는 능력의 차이, 성격의 차이와 같은 '다름'이 내재되어 있다.

예컨대, 학습상황에서 개별지도가 이상적인 학습지도란 사실에는 이의가 없다. 그것은 학습자 개인이 지니는 개인적 능력을 고려한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완전학습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학생들의 생활지도에서도 일대일 접근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즉 같은 상황에서 같은 잘못을 했을 경우에도 그 학생의 개인적 상황과 차이들이 충분히 고려될 필요가 있다.

두 학생이 무단결석과 지각을 반복했다. 교사는 거두절미하고 그 학생들을 학교에서 떠나게 만들었다. 다른 학생들이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전체를 위해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학생들에게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하는 학생들이었다. 이른 아침 아이를 깨어주는 부모가 없었고, 동생들을 혼자서 돌보아야 하는 입장이었다. 학교에 나오는 그 자체만으로도 다행스러운 경우였다. 그럼에도 교사는 이들을 학교 울타리 밖으로 내치고 말았다. 아이에 대한 배려나 교육적 애정은 없었다.

학생들 개개인은 각기 다른 환경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 그 차이는 천차만별이며 다양하게 나타난다. 위의 예에서 보듯 다양한 상황을 고려치 않는 교사의 기계적인 지도가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와 유사한 경우들은 또 있다. 학생들이 교실에서 화분을 깨뜨렸다. 한 교사는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학생들을 체벌하는 교사가 있었다.

반면 다른 교사는 화분은 때론 깨질 수 있는 것이라며 오히려 학생들이 다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학생들이 화분을 깨뜨린 똑같은 상황이었지만 교사의 입장에서만 학생을 생각한 교사와 학생의 입장을 먼저 고려한 교사의 차이를 볼 수 있다.

교사들은 나름의 교육관을 가지고 학생들을 지도한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지나친 채근과 예외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지도는 교육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은 교육 대상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전제되지 않는 한, 융통성 있고 예외 많은 지도가 훨씬 교육적일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교육은 '단죄의 침대'가 되고 만다.

교사가 학생들 모두를 책임지겠다고 하는 생각은 위험하다. 일견 책임감 있고 열심히 지도하는 교사의 모습으로도 비쳐질 수 있으나 그것이 오히려 학생들에게 교육적이지 못한 결과로 나타나는 경우는 수없이 많다.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라기보다는 교사 자신을 위한 교육활동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포용력 있는 지도, 다양한 상황들을 고려하는 지도가 훨씬 교육적 본질에 가깝다.

앞장서서 '나를 따르라'며 일사분란을 부르짖는 교육은 자칫 아이들을 학교 밖으로 쫓아내는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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