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표언복 대전 목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최저임금 인상과 임대료 상승, 원재료값 비용 등 외식 자영업자들이 폐업의 길로 내몰리고 있는 3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거리 한 상가에 임대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음식점 및 주점업 생산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3.1% 감소, 이는 2000년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이후 가장 큰 감소 폭이다. 2018.01.03. / 뉴시스

여러 사람 모인 자리에서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에 대한 불만과 질책이 빠지지 않는 건 예사롭다. 그런데 지난 송년모임의 분위기는 좀 다른 데가 있었다. 나라 걱정이 한결 깊고 비관적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한 시골 마을 식당에서의 모임. 사람마다 나랏돈 못 타 먹어 안달인 세태가 화제에 올랐다. 정부 지원금 때문에 종업원을 구할 수 없어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라는 식당 주인의 푸념이 떨어지자마자 예서제서 말을 거들고 나섰다. 수입이 있으면 지원금을 주지 않으니 차라리 지원금 받고 노는 게 났다는 생각들이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숙식 제공하고 월 2백만 원을 준대도 사람을 구하지 못해 간 이식 수술을 받고 요양중인 주인이 직접 주방에 선 사정, 유명하다는 대구의 한 대형 음식점이 월 230만 원의 급여에도 사람을 못 구해 폐업을 고려해야 할 지경에 이른 것이 모두 정부 지원금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수자원 보호를 위해 강이나 댐 주변의 건물을 비싼 값에 사들이면서 다른 한편으론 여전히 건축이나 영업 허가를 내 주는 바람에 이를 악용하는 모리배들이 성행하고 있다는 얘기, 부부가 이름 바꿔 5년마다 개·폐업을 반복하면서 지원금을 받아먹을 수 있게 된 축산 정책의 허점, 주민 17명 밖에 안 되는 마을에 정부 지원금 5억 들여 마을회관 지어 놓고 놀리고 있는 현실…. 얘기를 듣다보니 지원금이나 보상금 등의 명목으로 새 나가고 있는 나랏돈이 그야말로 봇물 터진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방문 일정이 끝나갈 무렵에 있었던 서울 모임에선 개탄과 울분의 분위기가 좀체 가실 줄을 몰랐다. 손님 불러놓고 집 나가서 격에 안 맞는 하급 관리나 보내 접대하게 하고, 수행한 기자들을 두들겨 팬, 다분히 의도적인 중국 측의 오만과 무례에 대한 울분이며, 주인도 없이 혼자 서민식당을 찾아 유타오(油條)나 먹고 다니며 제나라를 스스로 '작은 나라'라고 지칭했다는 문 대통령에 대한 개탄이었다.

노영민 주중 대사가 신임장을 제정하면서 중국에 대한 사대의 뜻으로 쓰이는 "만절필동 공창미래(萬折必東 共創未來)"라 방명한 것을 두고도 모두들 혀를 찼다. 이런 굴욕과 수모가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공연 시작 직전에 모란봉 악단을 철수하고 큰 맘 먹고 보낸 시진핑 특사를 만나주지도 않고 돌려보낸 30대 애송이 김정은만한 결기도 없느냐는 자탄도 있었다. 그리고 제천 화재 뒤의 대전 모임. 전국의 소방서에 고층건물 화재 진화에 필수적인 사다리차나 굴절차가 절대 부족하다는 뉴스가 맨 처음 화제에 올랐다. 대통령 말 한 마디에 원전 공사 중단시켜 놓았다가 1천억 원 넘게 물어주게 된 손해배상금, 정치인이나 고위 관리들에게 뿌려댄 '특별활동비'만 가지고도 해결될 문제라며 가슴을 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지방자치제 없애고 국회의원 수 절반만 줄이면 된다는 '묘책'까지 제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실패한 출산 장려 정책에 투입된 돈 10조 원이면 우리도 항공모함 한 척 가질 수 있었을 것이라는 비판이 엉뚱하게만 들리는 것도 아니었다.

표언복 대전 목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지난 해는 국민들의 나라 걱정이 특별했다. 나라가 흔들리면 그 폐해는 고스란히 민초 자신의 몫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주변 강대국들의 팽창 정책이 숨가쁘게 옥죄어 오고, 시한폭탄 같은 핵무기를 목에 달고 살게 된 현실은 분명히 위기다. 그러나 민초들의 나라 걱정은 이런 나라 밖 사정보다 '갈등의 도가니'처럼 되어 있는 나라 안 사정이 더욱 위태롭고 한심스러운 까닭이다. 이는 대통령과 정치 지도자들의 책임이다. 민초들이 목전의 이익과 편의를 따라 휩쓸리는 것은 흐르는 물길처럼 자연스럽다. 물길을 트고 바로잡아 주는 것은 정치 지도자들의 몫이다. 나라는 흥하고 망하며 성하고 쇠하는 일이 되풀이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우리는 역사 속에 명멸해 간 숱한 나라들을 기억한다. 나라 없는 백성의 고통과 설움은 우리가 더욱 절절히 경험한 바다. 불과 70여 년 전의 일 아닌가. 그 때의 상처와 피멍이 아직도 선연한데 또 나라가 위기란다. 제국주의 포식자들 앞에 속수무책 맨살 드러내놓고 있던 백 년 전 그 때와 똑같단다. 임금은 국경 끝가지 도망치고 민초들의 코가 무더기로 잘려 나가던 4백여 년 전 왜란 때의 사정과도 방불하단다. 길은 오직 하나. 하나되어 뭉치는 일 밖에 더 있겠나. 정치지도자들이 앞장서 소모적 정쟁을 지양하고 나라 살리는 일에 나서야 한다. 대통령이 솔선해 진영과 이념의 굴레를 벗어던진 채 좌-우를 보듬고 보-혁을 아울러 민초들의 나라 걱정을 덜 수 있는 새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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