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건립 전 교육공간… 日에 의해 전소 후 1939년 복원

음성 강당말 간와당
음성 강당말 간와당

[중부매일 이지효·김명년 기자] 음성군 음성읍 사정리(이장 이상혁)는 강당이 있었던 이유로 '강당마을'이라 불린다.

옛 온성 읍터인 사정마을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수찬 벼슬을 하던 안동김씨 18세손 김혜 공이 금왕 초계정씨 처가로 내려와 난리를 피하다 다시 심신산골 부용산 아래 사정리 골짜기로 피신해 살게 된 곳이다.

김혜 공은 후학양성을 위해 학문을 연마하고 가르치는 강당을 사정리 299번지에 세워 교육의 장이 형성돼 '강당마을'이라 칭하게 됐다.

'강당마을'을 빠르게 불러 '강당말'이라고도 부르는 이곳은 1907년 9월 10일 의병 200여명과 왜병들의 싸움으로 마을에 불이 나면서 강당도 전소됐다.

이후 32년 동안 복원되지 않다가 1939년 3월 16일 사정리 316번지에 다시 세우게 됐다.

음성읍 사정리 비석과 유래
음성읍 사정리 비석과 유래

그 후 1977년 1차 보수를 시작으로 1996년 2차 보수를 실시했고 그동안 현판이 없었는데 2004년 대쪽같은 성품인 김혜 공의 호를 따서 '간와당'이라 명하게 됐다. '간와당'은 2004년 음성군 향토문화유적 제 20호에 지정되면서 안동김씨 후손들과 군에서 관리하고 있다.

'간와당' 현판을 쓴 김연일 씨는 향교 전교인 부친의 영향으로 한학을 많이 배워 필체가 좋기로 유명하다.

간와당 현판 글씨와 천장.
간와당 현판 글씨와 천장.

이곳에서 태어나 고향을 지키고 있는 김증일(80) 송림농원 대표(사정향토지 부용 편찬위원장)는 안동김씨 후손으로 마을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김 대표는 "김혜 공이 낙향해 교육을 시키려고 보니 민가만 있어 강당을 지어 200호가 살았던 사정리 농촌마을의 교육을 시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강당마을에 100년이 넘은 집이 없는 것에 대해서도 말을 이어갔다.

"동학농민군이 침투한 당시 '전령(파발꾼)'이 옆 마을 용산리에서 사정리로 넘어오게 되면서 그 전령을 찾는다고 일본군들이 민가에 불을 놓으면서 마을 전체가 불에 탔지. 그때 강당도 불에 타 없어졌어요. 그 이후 1939년 지금 위치에 간와당을 짓게 된 것이지요."

'간와당'의 이름을 얻은 음성군 사정리의 이 강당은 일제강점기 당시 사정초등학교 건립 이전 간이학교의 역할을 했던 곳이다.

사정초 마지막 졸업생 사진
사정초 마지막 졸업생 사진

이곳은 동학농민운동과 을미의병 당시 일본군에 의해 불타면서 1939년 정면 5칸, 측면 2칸을 갖춘 팔작지붕 집으로 지어졌다.

조선 후기 마을의 공회당과 서당 역할을 했던 동시에 마을공동체의 구심체 역할을 했던 건물이기도 하다.

김증일 대표는 사정향토지 '부용'의 편찬위원장을 맡아 지난 2005년 사정리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후손들에게 고향의 역사를 보존하고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사정향토지 부용 표지
사정향토지 부용 표지

사정향토지 '부용'에는 강당마을의 유래부터 사정리 연혁, 김혜 공과 관련된 역사와 간와당이 생긴 유래 등을 담았다.

김 대표는 "500년 역사를 가진 사정리에 대한 기록이 하나도 없다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끼고 향토지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당시 2년 동안 자료를 수집해 이 자료를 만든지 벌써 17년 일이 됐는데 조금 더 일찍 자료를 수집했다면 더 많은 기록을 남길 수 있었을텐데 아쉬움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김 대표는 "이곳은 과거를 보러 서울을 가려면 거쳐야 했던 주요 통로이며 일제시대 말기 목탄을 나르는 통로가 있던 곳으로 숙식해야 하는 곳이 있어야 했다"며 "그래서 인지 말발굽을 만들던 대장간도 있었고 사기그릇을 만드는 곳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강당마을은 예전부터 교육에 힘써왔던 곳이라 그런지 안동김씨 후손으로 제11대 국회의원, 제36대 보건복지부 장관, 세계 보건 기구(WHO) 간호정책 고문, 국제간호협의회장을 지낸 김모임 박사부터 향교의 전교가 3명이나 배출되고 교장들도 많이 배출됐다"며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했다.

이렇게 교육적 맥을 이어온 '간와당'을 어떻게 활용할지가 과제로 남았다.

김 대표는 "지금은 마을 주민의 50%가 외지 사람들로 동네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지는 상황"이라며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자료들을 모아 강당과 연결해 보관하고 이를 통해 동네에 대해 알고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금 남아있는 지형과 지물들을 촬영해 캘린더로 만들어 집안 가까이서 사정리에 대해 접하고 알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강구중이다.

음성 강당마을 안동김씨 세거지 표석
음성 강당마을 안동김씨 세거지 표석

또한 지역 보존을 위해 마을 비석 옆 느티나무가 있는 팔각정이 있는 곳을 '쉬나무거리'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쉬나무는 없어 쉬나무를 구해 심을 계획도 밝혔다.

간와당 내부 현판과 마을 문고 상량문이 보인다
간와당 내부 현판과 마을 문고 상량문이 보인다

500년 역사를 지닌 교육의 발원지였던 음성읍 사정리 강당마을이 주변에 있는 '모래우물', '동학난리 묘'와 사정리와 멀지 않은 소여리에 위치한 '감우재 전승기념관' 등과 연계해 교육과 나라사랑의 역할을 한 곳으로 널리 알려지기를 기대해본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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