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가리 10여년 자취 감춰… 지정해제 앞둔 '이름뿐인 천연기념물'

미호강 수계에는 매우 중요한 천연기념물이 있다. 충북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에 있는 왜가리 번식지다. 정식 명칭은 '진천 노원리 왜가리 번식지'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천연기념물(제13호)로 지정했던 것을 대한민국 정부가 1962년 12월 천연기념물 제도를 정비하면서 다시 지정(제13호)한 유서 깊은 곳이다.

충북 진천군 이월면 논실길 113-12에 세워져 있는 '천연기념물 제13호 진천 노도래지' 지정비 모습. 뒷면에 조선총독부라는 음각자가 없는 것으로 보아 1962년 12월 대한민국 정부가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김성식
충북 진천군 이월면 논실길 113-12에 세워져 있는 '천연기념물 제13호 진천 노도래지' 지정비 모습. 뒷면에 조선총독부라는 음각자가 없는 것으로 보아 1962년 12월 대한민국 정부가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김성식

그런데 이 천연기념물이 지정 60년여 만에 지정 해제될 위기에 놓여 있다. 보호 대상인 왜가리가 10여년 전부터 일절 찾지 않는 '이름뿐인 왜가리 번식지'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어찌 된 일인지 지난달 29일 현장을 찾아가 봤다.

◆10년여 전에 이미 백롯과 날갯짓 끊겨

1990년대 중반 촬영한 충북 '진천 노원리 왜가리 번식지'의 모습. 이 당시에도 이미 번식지의 실체인 은행나무의 주요 줄기가 말라죽은 상태에서 백롯과 새들이 가까스로 둥지를 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김성식
1990년대 중반 촬영한 충북 '진천 노원리 왜가리 번식지'의 모습. 이 당시에도 이미 번식지의 실체인 은행나무의 주요 줄기가 말라죽은 상태에서 백롯과 새들이 가까스로 둥지를 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김성식

진천군 이월면 논실길 113-12. 조선 중기의 문신 신잡 선생 영정이 봉안된 노은영당이 위치한 곳이다. 이 사당 오른쪽으로 세월의 무게를 감히 짐작하기 어려운 은행나무 노거수 한 그루가 마을(이월면 노원리 노은실 마을)의 터줏대감으로 서 있다.

수령 1천 살이 넘는 이 은행나무가 바로 이곳 천연기념물의 실체다. 지금은 V자형의 커다란 밑둥치만 살아남아 있을 뿐 왜가리는 물론 백롯과의 다른 새와 둥지들이 전혀 눈에 띄질 않는다. 주변에 있는 나무에도 역시 마찬가지다. 번식기를 맞아 다른 왜가리 및 백로 번식지들이 모두 생명력으로 넘쳐나는 분위기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다만 은행나무 옆을 지키고 있는 천연기념물 지정비와 안내표지판만이 이곳이 여전히 천연기념물임을 알릴 뿐이다. 지정비에는 천연기념물 제13호 '진천 노도래지(鎭川 鷺渡來地)'라고 음각돼 있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안내표지판은 천연기념물 제13호 '진천 노원리 왜가리 번식지'라고 설명한다. 노도래지가 언제부턴가 왜가리 번식지로 바뀐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총독부박물관 문서 '천연기념물 지정을 위한 조사보고서'에 포함된 천연기념물 '진천 노원리 왜가리 번식지'의 약 90년 전 모습(왼쪽 사진)과 현재 모습이 크게 대조적이다. 이 보고서에는 이곳 번식지를 '백롯과 새들이 여러 개의 둥지를 트는 커다란 은행나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곳 번식지는 1973년 5월 이전까지는  왜가리 외에도 중백로, 중대백로 등의 백롯과 새들이 찾아와 둥지를 트는 '백롯과의 도래지 및 번식지'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김성식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총독부박물관 문서 '천연기념물 지정을 위한 조사보고서'에 포함된 천연기념물 '진천 노원리 왜가리 번식지'의 약 90년 전 모습(왼쪽 사진)과 현재 모습이 크게 대조적이다. 이 보고서에는 이곳 번식지를 '백롯과 새들이 여러 개의 둥지를 트는 커다란 은행나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곳 번식지는 1973년 5월 이전까지는 왜가리 외에도 중백로, 중대백로 등의 백롯과 새들이 찾아와 둥지를 트는 '백롯과의 도래지 및 번식지'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김성식

1990년대 중반 기자가 촬영한 안내표지판에 이에 대한 답이 들어 있다. 이 안내표지판은 '이곳에는 1천년 묵은 은행나무가 있어 해마다 번식기가 되면 왜가리, 중백로, 중대백로 등 백롯과 새들이 찾아와 30여 개의 둥지를 틀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던 것이 1973년 번식기 이후 백로들은 찾아오지 않고 왜가리만 날아와 새끼를 치고 있다고 전한다. 서식 규모는 은행나무 상층부에 왜가리 40~50마리만 와 새끼를 치고 있다고 덧붙이고 있다.

당시 촬영한 왜가리 번식지의 모습을 보면 이 안내표지판을 세울 당시와도 상황이 변했음을 알 수 있다. 고사한 듯한 은행나무 가지에 채 10개도 안 되는 왜가리 둥지만 덩그러니 보인다. 이미 이 시기(1990년대 중반)부터 이곳 왜가리 번식지는 쇠퇴의 길을 걸었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특히 이 사진을 촬영할 당시에는 은행나무보다는 인근 숲의 참나무 등에 오히려 더 많은 왜가리들이 둥지를 튼 상태였다. 현재 마을 쪽에서 보아 은행나무 뒤로 보이는 숲이 당시 왜가리들이 둥지를 틀었던 곳이다.

그로부터 약 30년이 지난 지금은 이곳이 천연기념물 왜가리 번식지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상황으로 변했다. 나이 지긋한 몇몇 주민들의 기억에서나 지워지지 않는 고향의 모습으로 각인돼 있을 뿐 은행나무와 인근 숲 그 어디에도 왜가리를 포함한 백롯과 새들의 날갯짓이 멈춘 지 오래다.

기자는 이번 방문에 앞서 2022년 5월과 7월에도 현장을 방문해 주변을 살펴봤으나 두 번 모두 왜가리를 비롯한 백롯과 새와 둥지를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주민들은 이곳에 왜가리와 다른 백롯과 새들이 찾지 않게 된 시기가 10년이 훨씬 넘는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도 천연기념물 지정 해제가 임박했음을 인식한 듯 매우 안타깝다는 입장을 전했다.

한 주민은 "30년 전만 해도 번식기가 되면 수많은 왜가리가 찾아와 장관을 이루던 곳이 지금은 은행나무 밑둥치만 남아있어 너무 허무하다"며 "비록 왜가리는 찾아오지 않더라도 이곳이 천연기념물이었다는 이야기가 오래오래 전해지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일제강점기 자료가 전하는 당시 상황

'진천 노원리 왜가리 번식지'와 관련한 일제강점기의 자료가 남아있어 당시 상황을 짐작 가능케 해준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총독부박물관 문서인 '천연기념물 지정을 위한 조사보고서'에는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내용과 사진이 포함돼 있다.

당시 보고서에는 '제13호 진천의 노(鷺) 둥지를 트는(營巣) 대공손수(大公孫樹)'라는 명칭이 보인다. 노(鷺)는 본래 해오라기(백롯과)를 의미하는 한자어이지만 왜가리를 포함한 모든 백롯과를 총칭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대공손수(大公孫樹)는 커다란(大) 은행나무(公孫樹)를 뜻한다. 따라서 조선총독부가 지정한 천연기념물 제13호는 '백롯과 새들이 여러 둥지를 트는 진천의 커다란 은행나무'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보고서에는 당시의 사진도 몇 장 첨부돼 있는데 그중 양쪽으로 뻗은 은행나무 줄기에 30여 개의 백롯과 둥지가 촬영된 사진이 눈에 띈다.(맨 앞 사진 중 왼쪽) 이 사진 속의 은행나무는 잎을 달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촬영 당시에 이미 줄기의 대부분이 고사했던 것인지, 아니면 은행잎이 나오기 전에 촬영한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쏠린다.

후자인 경우라면 백롯과 중 왜가리들이 은행잎이 나오기 전에 날아와 둥지 튼 것을 촬영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왜가리는 백롯과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찾아와 둥지 트는 습성이 있는데, 이 시기가 대략 양력 2월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이곳 노도래지는 당시에도 왜가리를 중심으로 무리를 이루는 백롯과 번식지로 이해할 수 있다.

또 이 사진을 보면 당시 이 은행나무를 왜 대공손수라고 불렀는지 쉽게 이해될 만큼 수세를 자랑한다. 하지만 이 은행나무도 결국 왜가리를 비롯한 백롯과 새들의 '독한 배설물'로 인해 가지가 말라 죽음으로써 수세도 나빠지고 번식지로서의 역할도 잃어 천연기념물 지정 해제가 임박해지는 처지가 됐다.

◆현재 상황과 동떨어진 문화재 설명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의 문화재 설명에는 '진천의 왜가리 번식지는 수질 오염으로 인해 왜가리의 먹이가 되는 개구리, 미꾸라지 등이 줄어 수가 감소되었으나 우리나라 왜가리 번식지를 대표하는 지역이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1990년대의 '진천 노원리 왜가리 번식지' 안내표지판. 이 안내표지판에는 이곳 천연기념물의 명칭이 지정비(진천 노도래지)와 다른 '진천의 왜가리 도래지'로 표기돼 있다. 1970년대에 이미 다른 백롯과 새들은 오지 않고 왜가리만 찾아오고 있음을 입증해 준다./김성식
1990년대의 '진천 노원리 왜가리 번식지' 안내표지판. 이 안내표지판에는 이곳 천연기념물의 명칭이 지정비(진천 노도래지)와 다른 '진천의 왜가리 도래지'로 표기돼 있다. 1970년대에 이미 다른 백롯과 새들은 오지 않고 왜가리만 찾아오고 있음을 입증해 준다./김성식

그러면서도 '진천의 왜가리 번식지는 1970년까지 노원리 보호 지역 내에서 자라고 있는 은행나무를 중심으로 수백 마리의 백로류 및 왜가리가 번식해 왔다. 그러나 현재는 이 은행나무가 새들의 배설물에 의해 말라 죽어가고 있으며, 5∼6개 둥지의 중대백로만 남아 있고, 왜가리와 백로들은 주변 숲으로 옮겨 살고 있다'는 현실과 전혀 다른 내용을 소개하고 있어 이의 시정이 요구된다./김성식 환경생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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