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만에 진천으로 돌아온 황새… 충북 최초의 둥지 포착

충북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짝을 맺어 둥지를 틀고 있는 황새 주인공들. 왼쪽이 개체 고유번호 B93 수컷 황새, 오른쪽은 개체 고유번호 E49 암컷 황새./김성식
충북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짝을 맺어 둥지를 틀고 있는 황새 주인공들. 왼쪽이 개체 고유번호 B93 수컷 황새, 오른쪽은 개체 고유번호 E49 암컷 황새./김성식

[중부매일 김성식 환경생태전문기자] '황새의 고향' 미호강에 기적이 일어났다. 미호강변에서 시작한 한반도 황새복원 프로젝트에 의해 황새(학명 Ciconia boyciana, 천연기념물, 멸종위기야생생물 1급)가 다시 미호강으로 돌아왔다. 우리나라에서 텃황새(텃새 황새)가 사라진 지 29년 만의 일이다.

더욱이 겹경사다. 황새 두 마리가 찾아와 쌍을 이뤄 둥지까지 틀고 있어 반가움이 더 크다.

'세계적인 생명터 미호강 대탐사'에 나서고 있는 중부매일 취재팀은 지난 21일 미호강 수계인 충북 진천군 백곡천 상류에서 송전탑에 둥지를 틀고 있는 황새 두 마리를 처음으로 확인했다.

미호강이 중부매일 취재팀에게 안긴 네 번째 선물이다. 재두루미, 노랑부리저어새, 가창오리에 이어 뜻밖에 날아든 황새 커플이 빅 뉴스거리를 선사했다.

◆마을 인근 송전탑에 둥지 트는 중

취재팀은 이날 진천군 백곡면 용덕리 산 56-1 송전탑에 둥지 틀고 있는 황새 커플을 발견했다. 암수 모두 다리에 개체 고유번호가 새겨진 가락지가 부착돼 있다. 하나는 E49, 다른 하나는 B93이라는 고유번호가 새겨져 있다.

이들은 한국교원대학교 황새생태연구원과 예산황새공원이 방사했거나 방사한 황새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연증식 개체인 것으로 확인됐다. E49는 2020년 태어난 암컷으로 그해에 방사됐다. B93은 방사한 황새들 사이에서 2020년 태어난 수컷이다.

'세계적인 생명터 미호강 대탐사'에 나서고 있는 중부매일 취재팀이 지난 21일 미호강 수계인 충북 진천군 백곡천 상류에서 처음으로 확인해 세상에 알린 '진천 백곡천의 황새 커플'. 이들은 진천군 백곡면 용덕리 산 56-1 송전탑에 둥지를 틀고 있다. 이 둥지는 한반도 황새복원 프로젝트 추진 이후 확인된 '충북 최초의 황새 둥지'다./김성식
'세계적인 생명터 미호강 대탐사'에 나서고 있는 중부매일 취재팀이 지난 21일 미호강 수계인 충북 진천군 백곡천 상류에서 처음으로 확인해 세상에 알린 '진천 백곡천의 황새 커플'. 이들은 진천군 백곡면 용덕리 산 56-1 송전탑에 둥지를 틀고 있다. 이 둥지는 한반도 황새복원 프로젝트 추진 이후 확인된 '충북 최초의 황새 둥지'다./김성식

취재팀으로부터 소식을 전해 들은 황새생태연구원 관계자는 "약 2개월 전부터 E49 한 마리가 진천군 관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을 GPS 위성추적기 등을 통해 관찰해 왔었다"며 "최근에 실시한 현지 모니터링에서도 E49 홀로 둥지를 틀려고 하는 등의 활동만 확인했을 뿐 B93과 짝을 이뤄 둥지를 틀고 있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고 밝혔다.

이날 현재 둥지 진척률은 70~80% 가량으로 두 황새 모두 둥지 틀기에 집중하고 있다. 둥지 완성은 보통 일주일 이상, 빠른 경우는 일주일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복원사업 이후의 '충북 최초 황새마을' 기대

한반도 황새복원사업은 한국교원대와 충남 예산군, 문화재청, 환경부의 노력으로 목표 달성(성공)이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다.(본 기획물 17~18회 참조)

예산황새공원에 따르면 올해 번식쌍의 숫자가 지난해 10쌍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돼 이번 번식기 중에 목표치(13쌍의 자연번식쌍)를 초과 달성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올해는 충남지역 외에도 경남과 전북지역에서 황새 번식쌍이 형성돼 복원사업 전망을 더욱 밝게 한다. 하지만 정작 황새복원이 시작된 충북에서는 그동안 번식쌍이 형성되지 않아 지역민들을 실망케 해왔다.

이런 가운데 진천 백곡천에서 둥지를 트는 황새 커플이 발견돼 복원사업이 시작된 이후 충북에서 드디어 최초의 황새둥지 나아가 최초의 황새마을을 다시 보게 됐다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하지만 전문가의 견해는 그러한 기대감이 성급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황새생태연구원 하동수 박사는 "산란시기가 너무 늦었기 때문에 알을 낳더라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국내에서 5월 이후에 황새가 산란한 사례가 없다"며 "올해의 정상 번식은 안타깝지만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알을 낳더라도 높은 기온 때문에 알의 발생 및 부화에 문제가 있을 수 있고 또 부화한다고 해도 무더운 7~8월에 육추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 정상적인 번식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분석이다.

황새는 번식기인 3~5월 사이에 3~5개 가량의 알을 낳아 약 30일간 포란하고 부화 후엔 약 55일간 육추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희망은 있단다. 하 박사는 "이들 황새가 내년 번식기까지 헤어지지 않고 함께 잘 지낸다면 올해 둥지를 틀었던 송전탑 혹은 인근 송전탑에 다시 보금자리를 틀어 정상 번식할 가능성이 높다"며 "그런 가능성을 감안해 충북도와 진천군, 지역단체·주민들이 모두 합심해 황새가 정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황새와 인연 깊은 진천…황새도 생거진천?

미호강 상류에 위치한 진천군은 예부터 황새의 고장으로 유명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미호강 상류의 황새 번식지 3곳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는데 그중 2곳이 진천군 관내에 있었다. 우리나라 마지막 황새 커플도 미호강 상류에 뿌리를 둔 개체군이었다.

2014년 4월 한국교원대학교 황새생태연구원 청람황새공원에서 가락지 교체 과정 중 사육장을 탈출한 뒤 이듬해 3월 충북 진천 백곡천 등에 나타나 50여 일을 머물렀던 개체 고유번호 B49 '미호'의 당시 모습./김성식
2014년 4월 한국교원대학교 황새생태연구원 청람황새공원에서 가락지 교체 과정 중 사육장을 탈출한 뒤 이듬해 3월 충북 진천 백곡천 등에 나타나 50여 일을 머물렀던 개체 고유번호 B49 '미호'의 당시 모습./김성식

또 지난 2015년 봄에는 진천 백곡천에서 이런 일도 있었다. 전 해인 2014년 4월 한국교원대 청람황새공원 사육장을 탈출한 2년생 암컷 황새 '미호'가 2015년 3월 백곡천에 모습을 드러낸 후 홀로 머물다가 1년생 야생 수컷 황새를 만나 한동안 함께 활동함으로써 '정착 희망'을 갖게 하기도 했다.

미호강의 대표 지천인 백곡천은 중류에 소형댐 규모의 백곡저수지가 들어서 있고 상류로는 깊은 골짜기에서 흘러 내려오는 하천을 끼고 농경지(논)가 펼쳐져 있다. 황새 커플이 둥지를 튼 용덕리 산 56-1 인근에는 백곡지 외에도 규모가 작은 소류지들이 3~4개 위치해 있어 잠재적인 먹이터 역할이 기대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호종개, 자가사리 같은 고유어종이 서식할 정도로 맑은 물을 자랑해 왔다. 이번에 황새 커플이 백곡천 상류를 삶의 터전으로 삼은 것도 이 같은 자연조건을 고려한 것으로 보여진다.

◆'황새의 고장'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 절실

황새의 고향 진천이 황새의 고장으로 거듭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 뜻밖에 찾아온 귀한 손님이 스스로 정착하기 위해 둥지를 틀고 있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온 셈이다.

문제는 앞으로의 상황이 그다지 밝지 않다는 데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시기적으로 너무 늦게 둥지 틀기가 시작돼 정상적인 번식이 어려울 것이란 전문가 예견처럼 어떤 돌발상황이 벌어질지 미지수다. 특히 더운 날씨에 황새들이 둥지 틀기에 나선 만큼 스트레스가 가장 우려된다.

황새생태연구원 하동수 박사의 조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록 올해 번식에 실패하더라도 황새 커플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고 내년에도 이곳에 둥지를 틀도록 하기 위해선 지자체와 지역단체·주민이 모두 합심해 노력할 것을 하 박사는 강조했다.

지난 2015년 봄 한국교원대 청람황새공원 사육장을 탈출한 '미호' 황새가 백곡천에 나타나 머물고 있을 때 보여준 '지역의 마음'을 이번에도 십분 보여줄 것을 주문한다. 당시 진천의 환경보호단체 등을 중심으로 먹잇감을 곳곳에 놓아주는 등 보호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진천군도 이들 단체를 적극 응원했다.

뜻밖의 빈객으로 찾아온 황새 커플이 이번 번식기를 무사히 넘기고 내년 번식기는 물론 대대로 정착해 지역의 자존심, 지역의 상징으로 자리 잡을 수 있기를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으로서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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