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미호강서 12개체 첫 출현… 39년만에 3개체 재발견

2021년 1월 3마리의 흰수마자가 마지막으로 확인된 미호강 내 흰수마자 서식지와 당시 촬영한 흰수마자(원내, 충북생물다양성보전협회 제공). 미호천교 하류부인 이곳에는 고운 모래로 이뤄진 모래톱과 여울이 형성돼 있다./김성식
2021년 1월 3마리의 흰수마자가 마지막으로 확인된 미호강 내 흰수마자 서식지와 당시 촬영한 흰수마자(원내, 충북생물다양성보전협회 제공). 미호천교 하류부인 이곳에는 고운 모래로 이뤄진 모래톱과 여울이 형성돼 있다./김성식

◆'미호종개 닮은꼴' 흰수마자

미호강에는 매우 중요한 물고기가 산다. 미호종개에 버금간다. 오히려 미호강의 서식 상황을 보면 미호종개보다 더 긴박하다. 바로 흰수마자(Gobiobotia nakdongensis)다.

몸길이 6~7cm에 불과한 작은 물고기이지만 미호종개와 함께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된 한국고유종이다. 모래가 깔린 곳에 살며 모래 속에 숨길 좋아하는 습성도 미호종개를 똑 닮았다.

현재 미호강을 대표하는 물고기이자 사라지는 원인도 비슷하다. 두 종 모두 모래가 깔린 여울을 선호하는데 서식지 파괴와 수질오염으로 점차 설자리를 잃어가는 것도 판박이다. 흰수마자는 잉엇과 꾸구리속이고 미호종개는 미꾸릿과 기름종개속인 데도 닮은 면이 많다.

다만 미호종개는 미호강을 비롯한 금강수계 내 일부 수역에 사는 반면 흰수마자는 미호강을 포함한 금강수계 외 낙동강, 한강, 임진강에도 서식한다. 서식 분포 범위는 흰수마자가 좀 더 넓다.

◆'낙동겐시스'가 왜 미호강에…

흰수마자의 학명은 'Gobiobotia nakdongensis Mori'다. 종소명인 낙동겐시스(nakdongensis)는 1935년 일본인 모리가 낙동강에서 처음으로 5개체를 채집해 한국특산 신종으로 발표할 당시에 붙인 이름이다. '한국의 낙동강에 서식하는 물고기'란 의미에서다.

28년 전인 1995년 6월 충남 공주 유구천에서 실시된 한 학술조사에서 채집된 물고기와 조개류. 덩치 큰 모래무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흰수마자와 미호종개들이다./김성식
28년 전인 1995년 6월 충남 공주 유구천에서 실시된 한 학술조사에서 채집된 물고기와 조개류. 덩치 큰 모래무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흰수마자와 미호종개들이다./김성식

하지만 4년 뒤인 1939년 일본인 우치다가 역시 낙동강에서 4개체를 채집한 이래 40여 년 동안 그 누구도 흰수마자를 확인하지 못했다. 생존 여부가 불투명했다. 40여 년 동안 9개체만 확인된 채 마치 '전설의 물고기'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1981년 고 최기철 박사(전 서울대 명예교수)가, 1983년엔 전상린 박사(상명대 명예교수)가 경남 의령 낙동강 수계에서 1개체씩을 채집해 서식을 재확인했다. 한국인 학자로는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일이다. 우리나라에 사는 물고기를 외국인이 신종 발표한 후 무려 46년과 48년이 지나고 나서야 국내 학자들이 찾아내 생존을 확인했다.

이 무렵 미호강(당시 미호천)에서는 학계를 발칵 뒤집어놓는 대사건이 일어났다. 손영목 박사(서원대 명예교수)가 1982년 4월부터 9월까지 수행한 미호강 어류 조사에서 무려 12개체나 되는 흰수마자를 찾아낸 것이다. 낙동강에만 산다고 '낙동겐시스'라는 종소명을 붙였는데 엉뚱하게도 금강 수계에서 채집된 것이다.

당시 손 박사는 논문(미호천의 어류상에 관한 연구)에서 "충북 청원군 오창면 석우리(현 청주시 오창읍 석우리)에서 흰수마자 12개체를 채집했다. 그동안 낙동강 산(産)으로만 알려졌으나 본 조사로 금강에도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며, 개체 수가 적고 서식처가 한정된 학술상 가치 있는 희귀어"라고 강조했다.

손영목 박사(서원대 명예교수)가 1982년 4월부터 9월까지 수행해 발표한 '미호천의 어류상'. 밑줄 친 부분이 12개체 확인된 흰수마자.(손영목 박사 제공)/김성식
손영목 박사(서원대 명예교수)가 1982년 4월부터 9월까지 수행해 발표한 '미호천의 어류상'. 밑줄 친 부분이 12개체 확인된 흰수마자.(손영목 박사 제공)/김성식

손 박사는 이를 계기로 전상린 박사와 함께 1983년 한국육수학회지에 '한국산 흰수마자, Gobiobotia nakdongensis Mori의 분포에 관하여'란 논문을 발표하게 된다.

◆매우 위태로운 '절멸 직전의 상황'

흰수마자의 미호강 내 서식 상황을 대변해 주는 긴급 뉴스가 2년여 전에 전해졌다. ㈔충북생물다양성보전협회가 2021년 1월 24일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리 인근 미호강 본류에서 흰수마자 3개체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1982년 손영목 박사가 처음으로 미호강 본류에서 흰수마자를 발견한 이래 무려 39년 만의 일이다.

당시 조사에 참여했던 박현수 충북생물다양성보전협회 사무처장은 "미호강에 서식하는 흰수마자 개체 수가 극히 적은 상황에서 미호천교 하류부에서 3마리가 확인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며 "이번에 발견한 새 서식지 위쪽으로 교량 공사가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 들어서게 될 산업단지와 근접해 있어 흰수마자 서식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방인철 순천향대학교 교수는 당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지난 30여 년 동안 미호강 어류조사에서 확인되지 않던 흰수마자가 겨울철 조사에서 3개체나 확인된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라며 "인근 세종보 수역에서 미호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온 개체들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박현수 사무처장은 당시 상황과 관련한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2021년 1월 미호천교 아래에서 흰수마자 3개체를 발견한 이후 4차례에 걸쳐 모니터링을 했으나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며 "미호강 최하류인 세종시 관내 합강리 수역으로 이동한 것 같다"고 추정했다.

그는 "현재 미호강 수계에서 유일하게 흰수마자를 확인할 가능성이 있는 곳은 미호강 최하류인 세종시 합강리뿐"이라며 "미호종개보다도 더 위급한 상황에 있는 물고기가 바로 흰수마자"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현재 흰수마자는 미호강 최하류부인 합강리 수역을 포함한 세종보 수역에 개체군을 형성해 서식하고 있으며 이들 개체군이 계절과 유수량, 하천 바닥(모래) 등 서식 환경에 따라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2021년 1월 미호천교 아래에서 발견된 3개체도 이들 개체군 중 일부가 올라온 것으로 추정된다.

◆모래 여울과 함께 추억 속으로

기자는 흰수마자와 미호종개가 1996년 특정야생동·식물로 지정 보호되기 이전에 충남 공주 유구천에서 이뤄진 한 학술조사를 현지 취재한 바 있다. 당시에는 조사단원이 족대로 모래톱 부근을 훑기만 하면 흰수마자와 미호종개가 잡혀 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꿈같은 이야기다.

미호강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박현수 충북생물다양성보전협회 사무처장(충북생물다양성보전협회 제공). 박 사무처장은 2021년 1월 미호강에서 흰수마자 3개체가 발견될 당시 조사자로 참여했던 장본인이다./김성식
미호강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박현수 충북생물다양성보전협회 사무처장(충북생물다양성보전협회 제공). 박 사무처장은 2021년 1월 미호강에서 흰수마자 3개체가 발견될 당시 조사자로 참여했던 장본인이다./김성식

당시의 서식 환경을 떠올려 보면 흰수마자와 미호종개가 왜 사라지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유구천은 온통 모래 천지였다. 강자갈도 별로 눈에 안 띌 정도로 하상 대부분이 모래층으로 이뤄져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시절의 모래층이 상당 부분 사라졌다. 곳곳에 강자갈이 드러나 있고 수질도 나빠져 있다.

당시의 유구천 모습과 지금의 미호강 모습이 자꾸만 오버랩(overlap) 되는 이유는 미호강 역시 어느 하천 못지 않은 모래하천이었기 때문이다. 곳곳이 두터운 모래층으로 뒤덮여 있던 미호강이 지금은 강자갈이 드러난 하천으로 변해가고 있다.

미호종개와 흰수마자가 확인되는 곳은 오로지 모래가 깔린 여울 부근이다. 모래가 깔린 잔잔한 여울이 온전하지 않는 한 이들 두 어종은 영원히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공동체다. 이들이 사라진 미호강,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김성식 환경생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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