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년 역사 품은 '모과나무·음나무·은행나무' 지역 자랑ㆍ수호신 역할

[중부매일 김성식 환경생태전문기자] 노거수(老巨樹)는 말 그대로 수령이 많고 커다란 나무를 말한다. 당산목, 정자목, 풍치목 등이 이에 속한다.

미호강의 품 안에는 유서 깊은 노거수 세 그루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연제리 모과나무, 오송읍 공북리 음나무, 괴산군 청안면 읍내리 은행나무가 그들이다.

이들 천연기념물은 생물학적 가치와 함께 역사적, 문화재적 가치가 큰 노거수들로 지역의 자랑거리이자 수호신으로서 지역민의 가슴 속에 살아 숨 쉬는 '정서적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청주 연제리 모과나무

미호강이 품은 국내 유일의 천연기념물 모과나무.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연제리의 목과공원 안에 있는 수령 500년 이상 된 모과나무 노거수. 조선 세조와 관련된 이야기를 품고 있는 유서 깊은 나무로 지금도 여전히 수많은 열매를 맺는 등 생명력을 자랑한다. /김성식
미호강이 품은 국내 유일의 천연기념물 모과나무.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연제리의 목과공원 안에 있는 수령 500년 이상 된 모과나무 노거수. 조선 세조와 관련된 이야기를 품고 있는 유서 깊은 나무로 지금도 여전히 수많은 열매를 맺는 등 생명력을 자랑한다. /김성식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연제리의 목과공원 안에 있는 수령 500년 이상 된 모과나무(Chaenomeles sinensis) 노거수다. 목과공원의 목과(木瓜)는 모과의 한자명으로 나무에 달린 참외란 뜻이다. 모과 열매가 마치 참외처럼 생긴 데서 이름 지어졌다.

지난 2011년 1월 모과나무로는 국내 유일하게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목과공원 안으로 들어서면 정면으로 마주 보게 되는 이 모과나무는 보는 순간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나무줄기가 우렁차고 기괴하다. 500여 년을 살아오는 동안 줄기 속이 텅 빈 상태가 된 데다 여러 줄기가 하늘로 솟구쳐 있는 모습이 마치 관목(밑동에서 가지를 많이 치는 나무)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아직도 봄이면 무성한 잎과 꽃을 피우고 가을이면 특유의 노란 열매를 무수히 맺는 등 왕성한 생명력을 보인다. 나무 높이는 약 13m, 가슴높이 둘레는 약 4m에 이른다. 이 나무를 직접 보지 않고는 모과나무가 이 정도로 자랄 것이란 생각은 엄두도 못 낼 성싶다.

이 모과나무는 조선 세조와 연관된 이야기를 품고 있다. 단종 때 문신 류윤이 단종 폐위 후 낙향해 이 모과나무 근처에 은거하고 있었는데 세조가 사람을 보내 함께 일할 것을 청하자 모과나무를 빗대 거절했다고 한다. 자신은 모과나무처럼 쓸모없는 사람이라며 거절의 뜻을 전했단다. 세조는 아쉬워하며 무동처사란 어서를 내렸단다. 무동처사는 '모과나무 마을(무동)에 사는 선비'란 뜻으로 훗날 류윤의 호가 됐다고 전한다.

목과공원 유래비에는 '(이곳 연제리는) 연못이 있어 연제동이라 했으며 모과나무가 있어 모과울로 불렀다'고 새겨져 있다. 연못은 지금의 연제저수지(일명 돌다리방죽)를 일컫는다.
 

 

청주 공북리 음나무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공북리 318-2번지에 위치한 천연기념물 음나무(일명 엄나무). 사방으로 호쾌하게 뻗은 나뭇가지들이 700년 세월의 무게를 절로 느끼게 한다./김성식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공북리 318-2번지에 위치한 천연기념물 음나무(일명 엄나무). 사방으로 호쾌하게 뻗은 나뭇가지들이 700년 세월의 무게를 절로 느끼게 한다./김성식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공북리 318-2번지에 위치한 음나무(Kalopanax septemlobus) 노거수다. 두릅나뭇과의 음나무는 보통 엄나무, 개두릅나무로 불린다. 하지만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 음나무로 올라 있기 때문에 음나무로 부르는 게 옳다.

1982년 11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 음나무는 공북리 마을 야산에 있어 겉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수령 약 700년에 나무 높이 약 10m, 가슴높이 둘레 약 5m인 거목이다. 공북리 마을 앞의 참나무 숲을 지나 마주하게 되는 이 음나무 역시 보는 순간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수세가 압도적이다. 특유의 잎과 가는 줄기의 억센 가시가 아니라면 도저히 음나무라고 생각 조차 못할 만큼 위용이 대단하다. 사방으로 호쾌하게 뻗은 나뭇가지들이 700년 세월의 무게를 절로 느끼게 한다.

음나무는 어려서부터 가지에 크고 억센 가시가 많이 돋는 특징이 있다. 음나무 가시는 예부터 악귀를 물리치는 데 활용해 왔다.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대문이나 방문 위에 커다란 가시가 달린 가지를 잘라 걸어놓음으로써 악귀를 쫓는 풍습이 있다.

어린잎과 새싹은 개두릅이라 하여 나물로 인기가 높고 줄기와 뿌리는 약재로 활용해 왔다. 음나무 가지를 넣고 끓이는 음나무 삼계탕은 여름철 보양식의 대명사 격이다. 그런 만큼 음나무는 수난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공북리 음나무가 수령 약 700년이 될 때까지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주민들이 신성시하며 치성을 드려왔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을 주민들과 함께 살아온 소중한 생명체로서 민속적·문화적 자료로 가치가 크고 생물학적 보존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2023년 10월 기준으로 공북리 음나무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세 그루만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상태다.

음나무의 가시는 줄기가 오래 묵으면 사라지는데 현재 공북리 음나무는 줄기 끝의 어린 가지에만 가시가 돋아 있다. 음나무 꽃은 7~8월에 피고 열매는 9~10월에 익는다. 공북리 음나무 주변에는 자연 발아한 어린 개체들이 여러 그루 자라고 있어 여전히 왕성한 번식력을 짐작케 한다.

귀 달린 뱀 전설 품은 1천년 노거수 '괴산 읍내리 은행나무'

충북 괴산군 청안면 읍내리 청안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천연기념물 은행나무. 고려 성종 때 선정을 베푼 성주와 귀 달린 뱀에 관한 전설이 전해진다. /김성식 
충북 괴산군 청안면 읍내리 청안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천연기념물 은행나무. 고려 성종 때 선정을 베푼 성주와 귀 달린 뱀에 관한 전설이 전해진다. /김성식 

충북 괴산군 청안면 읍내리 청안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은행나무(Ginkgo biloba) 노거수다. 1964년 1월 천연기념물 지정 당시 기준으로 약 1천살 정도로 추정되며 나무 높이 16.4m, 가슴높이 둘레 7.35m에 이른다.

고려 성종(재위 981∼997) 때 심어진 것으로 알려진 이 은행나무는 수령 약 1천년을 살아오는 동안 줄기 곳곳이 고사해 잘려져 나간 흔적이 있지만 나뭇가지가 비교적 고르게 사방으로 퍼진 전형적인 은행나무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은행나무에는 독특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나무 옆 안내표지판에는 "고려 성종 때 이곳의 성주(지금의 군수)가 백성들에게 잔치를 베풀면서 성(城) 안에 연못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여 백성들이 청당(淸塘)이란 못을 팠다. 당시 청당 주변에는 나무를 심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살아남은 것이 읍내리 은행나무다. 백성들은 성주가 죽은 후 선정을 베푼 성주의 뜻을 기려 나무를 정성껏 가꿔 오고 있다. 또 이 나무 속에는 귀 달린 뱀이 살면서 나무를 해치려는 사람에게 벌을 준다는 전설이 함께 내려오고 있어 지금까지 잘 보호된 것으로 보인다"고 적혀 있다.

그러면서 "이 은행나무는 마을을 상징하는 나무로서 또는 백성을 사랑하는 고을 성주를 기리고 후손들의 교훈이 되도록 하는 상징성을 가진 나무로서 문화적 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1천년 가까이 살아온 큰 나무로서 생물학적 보존 가치도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고 덧붙이고 있다.

현재 괴산 읍내리 은행나무가 서 있는 청안초등학교 교정에는 은행나무 옆으로 작은 연못을 파놓았는데 전설 속의 청당을 생각해 지역민들이 재현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이 은행나무와 가까운 곳에는 고려 초에 심어진 것으로 전해지는 느티나무(일명 안민헌 느티나무, 안민헌은 조선시대 청안현의 관아건물)가 위치해 있다. 이 느티나무는 고려 초에 청안현으로 부임한 한 감무(조선시대의 현감)가 심은 것으로 전해지는 점 등을 들어 수령 약 960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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